
시마바라 성은 마츠쿠라 시게마사가 1618년(게나 사년째)부터 완성까지 4~7년에 걸쳐 건축한 성이다. 이 성은 중앙에 5 층의 성을 배치한 웅장한 성이고 주요 지점에 크고 작은 탑들이 있으며 아즈키 모모야마 시대의 양식을 도입했다.
건축된 이후 이 성은 약 250 년 동안 네 가문의 봉건 영주들로 주인이 바뀌면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성은 안타깝게도 메이지 유신 때에 해체되었다. 성탑을 비롯하여 모든 건물들이 손실된 시마바라 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비바람에 바랬고 남아 있는 것은 성벽밖에 없었다.
시마바라 주민들은 이 성의 복원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의 열망이 열매를 맺었다. 최초로 1960 (쇼와 35년째)년에 ‘서쪽 탑’이 복원되었고 그 다음에는 1964년(쇼와 39년째)에 ‘성 탑’이 뒤이어 복원되었다. 성 건물들은 이후 박물관으로 개조되었고 각 층에 주민들이 수집한 기독교 문서들과 지역 유물들을 포함하여 역사적인 문서들이 전시되고 있다.
타츠미 탑은 1972 (쇼와 47년째)에 복원되었고 ‘서 세이보 기념관’이 개장되어 키타무라 세이보의 조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 문화 훈장을 수여한 예술가이다. 이뿐만 아니라 ‘관광 복원관’이 1996년(헤세 8년)에 문을 열어 다양한 이미지들과 물품들을 통해 Unzen Fugen-dake 재해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정문(오테몬)에서 시마바라 성을 보면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푸름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흰 색의 5 층으로 배열된 성을 감상할 수 있다. 성 주변에 둘러 판 못에는 15 미터 높이의 성의 흉벽이 있는 타일을 박은 흰 벽과 삼층 높이의 타츠미 탑, 훨씬 더 높은 서 탑을 볼 수 있다. 5 층으로 구성된 성 탑은 모두 흰 색을 띠고 있으며 35 미터 높이로 치솟아 있다.
돌 벽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거의 수직으로 서 있다. 건축된 지 390 년이 흘렀지만 전혀 그 위엄을 잃지 않았다.
13 개의 볼록한 부분 또한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방어의 사각 지대를 보완할 뿐만 아니라 보다 웅장한 모습을 창조하면서 성에 웅장한 위엄을 더해주는 데도 한 몫 하고 있다.
성 주변에 판 못도 그 자체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봄에는 붓꽃이 여름에는 연꽃이 특히 볼 만 하다. 못에는 낙엽들 사이에서 성 탑과 맑은 하늘을 비추고 있고 아주 매력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예상한 바와 같이 이 못은 무술의 권위자이며 성 건축 전문가인 마츠쿠라 분고 노 카미 시게카사의 작품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모리타케’라고 부르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1620년대에 이 성을 완성하기까지 성의 축조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7 년 동안의 시간과 노동력이 소요되었다.
이 성은 남쪽 방향으로 치우친 형태이며 제 1 울타리 지대가 있다. 성 탑 17 켄 (33 미터)가 그곳에 솟아 있다. 제 2 울타리(니노마루)는 북쪽으로 가는 통로 다리와 연결되어 있다. 더 북쪽으로 가면 제 3 울타리(사노마루)가 위치하고 있고 궁궐 또한 위치하고 있다. 외벽은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360 미터이고 북에서 남으로는 1,260 미터이다. 주변 둘레에는 3,900 미터의 벽이 있고 다양한 크기의 16 개의 탑들이 주요 지점에 배치되어 있다. 상위 계급 사무라이들의 주택은 안쪽에 배치되었고 하위 계급 사무라이들의 주택은 바깥 쪽에 있었다. 이 성은 40,000 코코의 다이묘를 위한 너무도 웅장한 성이다..
이 성이 축조된 이래로 이 성은 시마바라 봉건 가문의 정치 중심지로서 발전했고 250 년 동안 이어지는 봉건 영주들의 주거지 성으로 기능해 왔다. 뿐만 아니라 군사 업무의 중심지로서 이 성은 특히 마츠다이라 통치 시대에는 큐슈의 고관대작들의 비밀 회합장소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훌륭한 시마바라 성은 또한 메이지 유신 때는 버려지는 운명에 처했다. 성장하고 있는 나무를 비롯하여 이 성은 민간 기업에 의해 처분되어 결국에는 매각되었다. 성 탑은 운이 좋게도 시마바라 봉기 때에 화재에 의한 소실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1876(메이지 9 년)에 결국 해체되었다.
제 1 울타리 지대는 수 년 동안 농장으로 기능했고 성 탑만이 그대로 남겨졌다. 가장 바깥의 지대(사노마루)는 학교 부지가 되었고 최초의 초등학교와 시마바라 중학교 (후에 시마바라 고등학교)가 이 궁궐의 방대한 유적 위에 문을 열었다. 여학교와 비즈니스 스쿨, 그리고 최초의 중학교가 이 지역에서 임시로 존재했다..
현재의 시마바라 성은 1964(쇼와 39 년째)에 복원되었고 봉건 가문 일지의 기록과 타이쇼 시대의 말엽 이 성에 대한 그림이나 다른 문서들을 바탕으로 재건축되었다.
매 년 약 200,000 – 300,000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며 이 성은 이제 시마바라 관광 명소가 되었다.